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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종삼 - 『민간인』 민간인 1947년 봄 심야(深夜) 황해도(黃海道) 해주(海州)의 바다 이남(以南)과 이북(以北)의 경계선(境界線) 용당포(浦) ​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(水深)을 모른다 2021. 8. 10.
복효근 - 『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』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​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 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 ​ 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우들이 몰래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​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​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​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,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​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​ ​ ​ 아름다운 번뇌 ​ 오늘도 그 시간 선원사 지나다 보니 갓 핀 붓꽃처럼 예쁜 여스님 한.. 2021. 8. 7.
서정주 - 『문둥이』 문둥이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​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2021. 8. 6.
매미 매미 무더운 여름 매미가 운다 많은 계절들을 땅에 움츠러있다 이 뜨거운 여름 매미는 마지막 울음을 던진 채 땅바닥에 꼬꾸라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​ 인간의 시간에 비해 매미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고 허무했다 배를 뒤집고 죽어있는 매미를 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우주가 찾아왔다 우주의 시간에 비해 인간이 가진 것은 너무나도 초라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날 밤 매미가 울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2021. 8. 6.
인수분해因數分解 인수분해因數分解 이십 오 갑자甲子 불완전한 것이 불완전한 것을 분해한 시간 불완전하던 것이 세상에 던져진 해年 모유母乳로는 아이를 완전히 분해하지 못했다 ​ 일곱 갑자되던 해 석찬夕餐으로는 꼬마를 완전히 분해하지 못했다 십육 갑자되던 해 죽마竹馬로는 소년을 완전히 분해하지 못했다 열 아홉 갑자되던 해 상아象牙로는 청년을 완전히 분해하지 못했다 스물 두 갑자되던 해 위국爲國으로 장병을 완전히 분해하지 못했다 스물 다섯 갑자되던 해 비로소 모든것이 사랑愛으로 분해되다 2021. 8. 1.
광명光明 광명光明 삶은 삶이라 빛은 빛이라 방은 방이라 먼지만 곱게 나리쬐는데 고독하게 숨죽이던 어둠만이 내내 밝았어라 2021. 7. 29.